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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활 정보 & 팁

폭싹 속아수다에 4.3관련 내용이 안 나오는 이유

by ㅇ아싸ㅇ 2025. 3. 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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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70~80년대까지만 해도 제주 4·3 사건은 제주도 내에서도 제대로 교육되지 않았고, 전국적으로도 거의 알려지지 않았습니다.

당시에는 "빨갱이" 낙인국가보안법의 억압, 사회적 금기로 인해 도민들조차 말하기 꺼려했고,

심지어 가족끼리도 조심해야 하는 분위기였습니다.

그래서 4·3 당시를 겪은 부모 세대조차 자녀에게 이야기하지 않은 경우도 많았어요.

언제부터 알리기 시작했는가?

  • 1980년대 후반~1990년대 초: 민주화 흐름 속에서 제주 지역 시민단체와 학자들이 조금씩 문제 제기를 시작합니다.
  • 1987년 민주화 이후: 4·3 관련 진상 규명 요구가 본격화되기 시작하고, 학술 세미나, 증언 채록 등이 진행됩니다.
  • 1999년: ‘제주 4·3사건 진상규명 및 희생자 명예회복에 관한 특별법’이 제정되면서 국가 차원의 진상규명이 시작됩니다.
  • 2003년: 당시 노무현 대통령이 국가 차원의 공식 사과를 하며, 전국적인 인식이 확산됩니다.
  • 2018년: 문재인 대통령도 4·3 추념사에서 진상규명의 중요성을 다시 강조하며 전국적 관심이 높아졌습니다.

제주에서는 지금도 쉬쉬하고 있는가?

요즘은 예전처럼 쉬쉬하는 분위기는 많이 줄었지만, 세대별·지역별 차이는 여전히 존재합니다.

  • 공식 교육에서는 4·3을 다루고 있지만, 깊이 있는 내용은 가정이나 지역사회에서 접해야 알 수 있는 경우가 많아요.
  • 보수적인 시각에서는 여전히 ‘좌익 폭동’ 이미지로 보는 경우도 있어, 사회적 갈등이나 이견이 여전히 남아 있는 편입니다.
  • 특히 직접적인 피해 가족이거나 지역사회 중심에 있는 사람들 중에는 여전히 말하기 조심스러워하는 이들도 존재합니다.
 
 

■ 국가 차원의 움직임 주요 시점

  • 1999년: 김대중 정부 때
    「제주4·3사건 진상규명 및 희생자 명예회복에 관한 특별법」 제정 (처음으로 법적 근거 마련)
    → 하지만 이때까지는 조사 착수 단계였고, 국가의 입장 표명은 없었음.
  • 2003년: 노무현 정부 때
    제주4·3사건 진상조사보고서 발표 (정부 공식 보고서)
    노무현 대통령이 공식 사과 (대통령 명의로 희생자와 유족에게 처음으로 사과)
    → 이때부터 진정한 의미의 **"국가 책임 인정"**이 이뤄졌다고 볼 수 있습니다.

이후 흐름

  • 2014년: 유족회 중심으로 배·보상 요구 본격화
  • 2018년 이후: 문재인 정부에서도 4·3 관련 추념사 강화, 특별법 개정 논의
  • 2021년: 개정된 「제주4·3특별법」 시행 → 배·보상 조항 신설, 명예회복 절차 간소화

즉, 김대중 정부 때 법적 문을 열고, 노무현 정부 때 국가가 책임을 인정하고 사과하면서 국민적 인식이 전환되기 시작했다고 보면 됩니다.

드라마 **‘폭싹 속았수다’**의 배경이 70~80년대라면 제주 4·3 사건은 이미 한참 지난 과거의 일로 여겨졌을 가능성이 커요. 물론 그 시기에도 지역사회나 가족들에게는 여전히 깊은 상처로 남아 있었을 수 있지만, 사회 전반에서는 그 이야기를 공공연히 꺼내기 어려운 분위기였죠.

당시에는 4·3에 대해 말하는 것조차 금기시되던 시절이기도 했고요. 그래서 작품 속 인물들이 직접적으로 4·3을 언급하진 않더라도, 그 여운이나 사회 분위기, 침묵의 문화가 은근히 깔려 있을 수도 있어요.

혹시 드라마가 그 시대 제주 사람들의 감정이나 사회 분위기를 좀 더 진하게 그린다면, 직접 언급은 없어도 간접적으로 느껴질 여지는 있을지도 모르죠.
그런 의미에서 “그냥 지난 일”처럼 다뤄지는 게 어쩌면 그 시대 분위기를 반영한 것일 수도 있겠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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